
우리 동네 책방으로는 코뿔소책방과 소예책방이 있다.
코뿔소 책방은 뉴욕의 공원을 연상시키는 널찍한 공원을 앞에 두고 있어서 내가 책방 자리로 찜했던 곳이다. 대출을 받아야 하는 고민과 화장실에 대한 불만족 때문에 고민만 했는데 몇 달 후 그곳에 코뿔소 책방이 들어왔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 동네에 살고 있다니! 놀라움이 70, 기회를 놓친 분함이 30으로 느껴졌다.
내 것도 아닌데 뺏긴 것 같은 혼자만의 아쉬움으로 책방을 어슬렁거리며 구경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라면 이 넓은 공간을 이렇게 잘 운영할 수 있었을까? 설령 그렇다 해도 내 작업은 뒷 전이 됐을 것 같다. 그러니 내 것이 아니었던 거다.
한 번 기회를 놓치고 나니 일단 책방 이름부터 지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을 짓고 온라인 책방 운영을 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내 이름을 딴 소예책방으로 결정했다. 소신있는 예술가. 소박하고 예의바른 사람. 뭐 그런 뜻으로. 그런데 검색어를 돌렸더니 헉! 불과 몇 달 전에 온라인 책방을 연 소예지기님이 있었다.
"소담스럽고 예쁘다라는 순우리말로 책방 이름을 지었어요. "
아뿔싸, 이번에는 이름을 뺏긴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sns 디엠을 보냈다.
"어머, 제 이름으로 책방을 열려고 했는데 먼저 문을 연 분이 계셨군요.^^"
상냥한 소예지기님은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해할 일은 아닌데 말이다. 소예지기님은 우리집 뒤, 10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 동네에 둘 씩이나 산다는 건 일종의 경고음처럼 느껴졌다.
운명의 여신이
" 이래도 계속 생각만 할래? 벌서 10년째야."
하며 내 뒤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내 안에서 세 번째 폭풍이 일었다. 우리 동네 예쁜 까페거리를 다니면서 나도 이 곳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상상을 한 거다.
'올 해와 내년엔 수험생의 엄마로 바쁘고, 지금 두번째 창작 그림책 작업에 몰두해야 하는데 무슨 책방을 연다고 이럴까.. 난 언제나 체력은 부족하고 열정은 넘치지. 게다가 월세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려고?'
그러자 머릿 속에서 코뿔소...소예책방...이라는 단어가 떠다녔다. 잡히지 않는 얄미운 모기처럼.
일이 풀릴 땐 술술 풀린다. 이곳저곳 저렴하고 조용하고 책방과 어우러질 수 있는 주변 상가가 있는 곳을 알아보고 다녔는데 내가 원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책방을 열게 되었다. 우연히 시세보다 싼 월세로 나온 거다.
나는 세 번째의 폭풍이 불었을 때, 에이, 몰라! 하고 그냥 팔을 쭉 뻗어서 꿈을 잡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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