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스티커

책방 자리의 전세입자로부터 이런저런 하소연을 듣기 싫었다. 그래서 그냥 내가 조금 손해 보자는 생각으로 전세입자가 쓰던  장비가 잔뜩 달린 cctv와 필요도 없는 스피커를 샀다. 결국 당근 마켓에 되팔아야 했다.  번거로움에 살짝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쓰레기를 받은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벤이 핸드폰으로 연결되는 CCTV 캠을 책방에 설치해주었다. 만약 내가 했다면 설치 방법과 설명서를 인터넷에서 찾아 반복해 읽으며 하루치 에너지를 다 쓰고 방전됐을 거다. 고마운 아들 덕분에 에너지를 비축했다.

 

책방을 꾸리는 일에 도움을 준 일등공신을 꼽자면 벤, 그다음이 간판집 사장님, 그다음이 오드리이다. 그리고 응원을 보내준 지연 씨와 경화 씨, 서울에서 달려와 책방 현장을 봐준 재영 언니도 있다. 주변의 응원이 없었다면 못해냈을 거다.

 

벤은 캠을 설치해 주고 서랍장 조립도 도와줬다. 마지막에 남은 서랍장 바퀴 정도야 혼자 쉽게 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벤을 집으로 보냈는데 아무리 혼자서 바퀴를 달려고 해도 도무지 나사가 들어가질 않았다. 결국 다다다음 주에 간판 사장님이 오시는 날에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구석에 세워 놓았다. 책방 한쪽에 비뚤게 세워진 그 철제 서랍장을 볼 때마다 눈을 흘기게 된다.  

'쉽게 풀리지 않는 게 인생인가 봐. '

 

서랍장 조립으로 지쳐서 좀 쉬려는데 책방  앞에서 얼쩡거리는 비둘기가 보였다. 책방  앞에 둔 고양이 사료를 먹으려고 오는 거였다. 나는 후다닥 달려가 책방 문을 열었다. 그런데  얄미운 비둘기는 딸랑하고 울리는 현관 종소리에  슬그머니 피하기만  뿐 도망치지는 않았다. 내가 발로  소리를 냈더니 그제야 후다닥 날아서 책방 바로 앞 나무에 앉았. 분명 내가 책방 문을 닫으면 도로 날아와 고양이 밥을 먹을 심산인 거다.

나는 책방 안에서 빗자루를 들고 나왔다. 위협적으로 보이기 위해 성화 봉송하는 사람처럼 빗자루를 올려 들고 비둘기가 앉아있는 나무를 향해 의기양양하게 걸어갔다. 내가 점점 가까이 다가서자 비둘기는 놀라서 눈이 동그래지더니 (원래 동그랗지만) 다른 나무로 푸드덕 날아갔다. 

'요것 봐라? 멀리  가고 이젠 책방 바로  나무에 앉네?'

나는 포기하지 않고 빗자루를 올려  채 비둘기를 향해 늠름하게 걸어갔. 그런데 이번엔 더 높은 나뭇가지 위로 폴짝 올라가는 거다.

'흥, 내 키보다  높이 올라간다 이거지? 넌 내가 치켜들고 있는 이 빗자루가 안보이니?'

나는 빗자루를 들어서 잽싸게 나무를 쳤다. 그러자 비둘기가 화들짝 놀라며 달아나다가 유리창에 쿵 하고 부딪혔다. 순간 비둘기 시체가  발아래에 떨어질까 봐 무섭고 걱정이 됐지만 다행히 비둘기는 힘차게 멀리멀리 날아갔다.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다세대 상가 주택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누군가 나를 내려다본다면 웃긴 아줌마라고 생각할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났다.   

 

그나저나 이제는 비둘기뿐만 아니라 까치까지 날아온다. 까치는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고양이를 쫓아내고 밥을 뺏어 먹는다. 까치가 그렇게 공격적인 새인  처음 알았다. 

자구 새들이 날아오니 책방 문 앞에서 고양이 밥을 줘야 하는 건지 고민된다. 그동안 고양이가 잘 먹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서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난 비둘기에 시달렸던 기억이 있어서 너무너무 싫어하는데 어쩌지.

비둘기로부터 고양이 밥을 지킨 뒤 추위에 떨며 쓰레기를 버리고 왔다. 이제 좀 앉아서 쉴 수 있겠지 했는데 이번엔 어디선가 나타난 차가 내 책방 뒷문에 바짝 붙여서 주차를 해놓았다. 그곳은 차가 회전해서 돌아가는 구간이라 주차를 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나도 멀리 주차를 해놓는데 누군지 개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연락처도 없고 사이드 미러도 접지 않았다. 나는 스카치테이프를 길게 끊어서 그 차의 문까지 붙였다. 연락처도 없이, 이곳에 주차를 하면 안 된다는 종이와 함께.

 

별별 일에 신경을 다 쓰다 저녁노을이 조금씩 번지기 시작할 때 겨우 컴퓨터 의자에 앉았다. 시시한 일들로 낮시간을 다 보냈다는 생각을 하며 비건 베이커리에서 사 온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먹는데 조금 우울했다.

'오늘은 꼭 그림 포스터와 마스킹 테이프를 인쇄소에 주문해야지. 그리고 작업도 수정하고... 아, 당일치기로 강원도라도 다녀오고 싶다. 아, 코코미가 3월에 같이 가자고 했던 전주도 가고 싶다. 아, 2월이 끝나가는데 달콤한 딸기잼도 만들고 싶다.'

 

오늘은 비둘기와 낡은 차와 삐둘게 놓인 서랍장에게 잔뜩 심술을 부린 할머니가 된 것 같은 하루였다. 시시콜콜한 일들로 반나절을 보내며 쉴 틈 없이 바빴는데 책방 준비는 허술하고, 개인 작업은 진척이 없는 하루였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면 만날 사랑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요즘의 나는 시시한 일에 자주 화가 나고, 소소한 일에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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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라는 현타가 올 때면 '작업실을 좀 크게 늘린 것뿐이야.'라는 생각으로 정신승리를 했다. 그런데 막상 책 주문과 단말기, 커튼, 책상, 의자, 책장 등을 주문하고, 그 밖에도 굿즈와 앞으로 책방에서 진행할 수업을 짜다 보니 피로와 후회와 고단함이 밀려왔다.

무언가 힌트를 얻기 위해 작은 책방을 차린 사람들의 글을 읽고, 주변의 책방을 기웃거려보면 나처럼 혼자서 낑낑대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서 오히려 서글픔이 들었다. 

그런 내 울적함에 대해 경화 작가는 "그래도 혼자서 하니깐 내 맘대로 꾸릴 수 있어서 좋잖아요. 의논해서 의견 조율할 일도 없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해줬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기운 없는 미소를 지었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경화 작가의 말이 맞았다.

나는 오일스테인을 칠한 나무를 좋아하는 내 취향대로 원목 매거진 랙을 주문했다. 주문 제작 가구라 시간이 꽤 걸렸지만 물건을 받아서 한쪽 벽에 진열해 놓으니 마음에 들었다.

내 키보다 크고, 얼굴도 없는 가구인데 볼 때마다 나와 쿵작이 잘 맞는 친구처럼 느껴졌다. 나무의 결마다 켜켜이 쌓아놓은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 상큼한 주황색 스탠드와도 잘 어울려서 이 가구를 고른 나의 탁월함에 부듯함이 들었다.     

'그래, 경화 작가의 말대로야. 혼자서 하니깐 내 취향을 확실하게 찾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

 

아직 할 일이 남았다.  타이머를 사서 작동법을 익힌 후 램프에 연결할 생각이다. 그럼 퇴근 후 아무도 없는 책방에 작은 불빛이 연출되겠지. 우후훗.... 그럼 타이머 사용법을 또 검색해야 한다... 피곤해.... 천천히 해야지... 뿌듯함은 잠깐이고 피로와 수고는 긴 것 같다.

오드리가 생일선물로 준 모빌도 걸었다. 처음엔 더 높은 곳에 걸려 있었는데 책상 위의 전등으로 위치를 옮기니 아기자기하고 잘 어울렸다. 내 손이 안 닿는 높이에 달린 모빌을 옮기기 위해 나는 방법을 궁리해야만 했다. 모빌 아래에 사다리를 세팅해두고 미니 냉장고를 배달해주신 기사님에게 잽싸게 부탁한 거다.

모빌을 보면서 사소한 꾀를 낸 자신을 토닥여줬다. 기특해 기특해~ 

 

경화 작가가 나에게 선물해준 선셋 무드등도 켜보았다. 멀티탭이 없어서 잠깐 틀고 빛을 구경하면서 행복해 했다.   

코코미가 선물해준 시계는 아직 딱 어울리는 자리를 못 찾고 책방 안을 여행 중이다. 소품의 위치가 제자리를 찾으려면 당분간 이곳저곳에 놓고 봐야 할 것 같다. 

아직은 가구와 책이 다 배송되지 않아서 뭔가 허전하고 헐렁한 느낌이다. 사람들은 언제 오픈할까 궁금증을 갖고 기웃거리지만 책방 오픈을 위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다. 주제별로 묶어 놓은 비밀 책들을 포장할 포장지를 사고, 책방 도장을 제작하고 굿즈를 디자인하고, 유리창에 붙일 시트지도 주문해야 한다. 거기에 점심과 저녁을 차리고,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챙기는 일도 있어서 피로의 곰 한 마리가 늘 어깨에 붙어있는 것 같다.   

 

한동안 퇴근 후 집으로 가면 오드리가 물었다.

 "오늘 작업은 많이 했어요?"

 내가 퀭한 얼굴로 "아니, 못했어."라고 겨우 대답을 하면 오드리는 게으름에 대해서 운운했다. 이건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을 몇 번 하다가 나중엔 "오늘도 일이 많았어. "라고만 말했다.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너에게 무슨 말을 하겠니. 라는 심정으로 입을 닫았다.    

집에 가면 방전이 돼서 아무 생각도,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소파에 쓰러져서 텔레비전을 보는 엄마에게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유튜브로 포토샵 공부를 하라는 오드리, 넌 내 인생이 얼마나 피곤한지 모를 거야. 넌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너의 시간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해.

 

나는 남들보다 적은 에너지를 매일 충전하고 다 쓰며 산다. 그래서 입술을 떼기 힘들만큼 피곤하지만 지금 매우 잘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중얼거리고 있다. 언제나 외로웠지만 언제나 씩씩하게 해냈으니 앞으로도  해낼 거다.   

어쨌거나 지금 배가 고프니 집에 가서 맛있는 저녁을  먹어야 겠다. 그리고 다시 책방으 돌아와 타이머와 멀티탭을 주문하고, 책방에서 할 수업 홍보 포스터와 도장을 디자인할 거다. 오늘도 다크써클을 끌어안고 잠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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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공사가 시작되었다. 편의점의 커다란 냉장고와 작은 창고, 이런저런 집기가 빠지고 공사를 위한 목재들이 어지럽게 쌓였을 때 내 머릿속은 뒤숭숭하고 어지러웠다.

'내가 어쩌자고 책방을 열었을까? 책방 준비만으로도 힘든데 여러 가지 힘든 일은 왜 한꺼번에 오는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책방은 나중으로 미뤘을텐데... 그래도 지금 아니면 평생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 아니지 빚부터 갚고 생활을 꾸린 뒤 십 년 후에 했어도 됐는데..'

일주일 뒤, 현장에 남아있는 집기들을 정리하기 위해 잠깐 들렀을 때 목공 공사가 끝난 책방 안은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공간은 내 생각보다 널찍했고, 내 생각보다 예쁘게 나올 것 같았다.

그러자 뜻밖의 공포감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렸고, 사람들이 이 공간으로 들어올 거란 생각만으로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갑자기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이 들었다. 독서 수업도, 책방 운영도 전혀 준비가 안되었다는 좌절감이 공포심과 함께 왔다.

그동안의 도전에서 이토록 공포에 질린 적이 있었을까 더듬어 보았지만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웠을 때 말고는 이렇게 무섭고 떨린 적은 기억나지 않았다.

'왜일까? 왜 설렘보다 어지러운 공포감이 드는 거지?'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자주 연락하는 C에게 다짜고짜 전화를 걸었다. 마냥 설렐 줄 알았는데 무섭다고, 너무 두려워서 지금 정신을 못차리겠다고.

그녀는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아요. 라며 자기의 경험을 한참 동안 얘기했고, 얘기는 삼천포로 빠졌지만 그래도 나는 패닉 상태에서 정신을 조금 차릴 수 있었다.

 

나는 다음날까지 나를 휘청이게 한 공포심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최근에 인생이 꺾이는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몰려와 꿈을 이루는 도전에 대한 즐거운 스트레스가 내 안의 감정 용량을 초과해버린 것 같다. 아니면 경제적인 스트레스가 용기와 희망을 팍 꺾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나는 그냥 안아주기를 바랐다는 거다. 어떤 조언도, 수다스러운 위로의 말도 필요 없었다.

그저 안아주기를, 그게 백 마디의 말보다 힘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어리둥절했고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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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로 가는 길은 두 개의 선택지가 있다. 그늘이 드리워진 길과 햇살이 반짝이는 초록 나무 길.

여름엔 상가 건물 때문에 생기는 그늘이 짙은 길로 가고, 요즘처럼 바람이 쌀쌀한 게절엔 햇빛이 내리쬐는 초록나무 길로 간다. 그 길은 일렬로 서있는 나무들이 긴 그림자를 만드는 널찍하고 변화무쌍한 길이다. 1월에 책방 겸 작업실을 차리면 이제 이 예쁜 길을 자주 걷진 못할 거다.  

오늘도 그런 생각을 하며 서운하지만 달콤한 기분으로 걸었다. 그러다 작업실로 들어섰고, 어제까지 작업을 마감하느라 정리가 안 된 작업실을 휙 둘러보자마자 후회했다.    

'이렇게 따뜻하고 여유로운 공간을 박차고 나가다니..... 내가 왜 책방을 연다고 했을까? 내가 뭔 일을 저지른거지? ... 내 마음의 북소리는 안주하지 말고 도전을 해 봐! 이번 생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자! 라고 말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피곤해....'

피곤해서 누운 작업실의 바닥은 따뜻했다. 그 따끈함은 이제와서 무를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곱씹게 했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곰곰이 생각해 봤다. 

 

모든 도전엔 리스크가 있다. 안전하고 확실한 도전은 없다. 분명 나는 깨끗하고 조용한 지금의 작업실을 떠올리며 후회를 할 거고, 서점과 작업실을 동시에 운영하며 실수를 할 거다. 나는 2와 5, 6과 9를 늘 헷갈려 하는 사람이니까. 사실 저금한 돈을 까먹는 인테리어 비용에 벌써 후회가 시작되고 있다. 내 이성은 그렇게 쯧쯧거리고 있다. 

그러나 내 감성은 박수를 치고 있다. 안락한 작업실의 문을 닫고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은 자신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다. 분명 지금보다 더 후회하고, 실수 하고, 툴툴거리겠지만 언제나 그랬듯 그 속에서 배울 거다. 

무엇보다 나는 이렇게 생겨 먹었다. 동네 서점은 언젠가는 도전했을 일이다. 게다가 이미 계약서에 싸인을 했고, 동네방네 소문을 냈으니 어쩔 수 없다. 잘 하겠다는 욕심을 덜고 차근차근, 천천히, 조금씩 해볼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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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책방으로는 코뿔소책방과 소예책방이 있다.

코뿔소 책방은 뉴욕의 공원을 연상시키는 널찍한 공원을 앞에 두고 있어서 내가 책방 자리로 찜했던 곳이다. 대출을 받아야 하는 고민과 화장실에 대한 불만족 때문에 고민만 했는데 몇 달 후 그곳에 코뿔소 책방이 들어왔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 동네에 살고 있다니! 놀라움이 70, 기회를 놓친 분함이 30으로 느껴졌다. 

내 것도 아닌데 뺏긴 것 같은 혼자만의 아쉬움으로 책방을 어슬렁거리며 구경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라면 이 넓은 공간을 이렇게 잘 운영할 수 있었을까? 설령 그렇다 해도 내 작업은 뒷 전이 됐을 것 같다. 그러니 내 것이 아니었던 거다.

한 번 기회를 놓치고 나니 일단 책방 이름부터 지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을 짓고 온라인 책방 운영을 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내 이름을 딴 소예책방으로 결정했다. 소신있는 예술가. 소박하고 예의바른 사람. 뭐 그런 뜻으로. 그런데 검색어를 돌렸더니 헉! 불과 몇 달 전에 온라인 책방을 연 소예지기님이 있었다.

 "소담스럽고 예쁘다라는 순우리말로 책방 이름을 지었어요. "

아뿔싸, 이번에는 이름을 뺏긴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sns 디엠을 보냈다. 

 "어머, 제 이름으로 책방을 열려고 했는데 먼저 문을 연 분이 계셨군요.^^"

상냥한 소예지기님은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해할 일은 아닌데 말이다. 소예지기님은 우리집 뒤, 10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 동네에 둘 씩이나 산다는 건 일종의 경고음처럼 느껴졌다.

운명의 여신이

 " 이래도 계속 생각만 할래? 벌서 10년째야." 

하며 내 뒤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내 안에서 세 번째 폭풍이 일었다. 우리 동네 예쁜 까페거리를 다니면서 나도 이 곳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상상을 한 거다. 

'올 해와 내년엔 수험생의 엄마로 바쁘고, 지금 두번째 창작 그림책 작업에 몰두해야 하는데 무슨 책방을 연다고 이럴까.. 난 언제나 체력은 부족하고 열정은 넘치지. 게다가 월세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려고?'

그러자 머릿 속에서 코뿔소...소예책방...이라는 단어가 떠다녔다. 잡히지 않는 얄미운 모기처럼.

 

일이 풀릴 땐 술술 풀린다. 이곳저곳 저렴하고 조용하고 책방과 어우러질 수 있는 주변 상가가 있는 곳을 알아보고 다녔는데 내가 원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책방을 열게 되었다. 우연히 시세보다 싼 월세로 나온 거다. 

나는 세 번째의 폭풍이 불었을 때, 에이, 몰라! 하고 그냥 팔을 쭉 뻗어서 꿈을 잡아버렸다.

저질렀다!

오래도록 마음 밑바닥에 두었던 부싯돌을 꺼내서 불을 붙였다. 바로바로...2022년에 책방 겸 작업실 시나몬베어를 열게 된 것이다. 

그 첫걸음으로 인스타 계정을 만들었다. 너무 떨려서 손 끝이 차갑고 아찔했다. 이상하게도 2022년이 영영 안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간절히 원하던 것을 손에 넣으면 으악!하고 던지고 도망치게 되는 이상한 심정이지만 ...저질렀다. 부싯돌을 부딪혀 불을 붙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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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동안 입시미술 학원에서 그림을 배우고, 성적을 관리해서 특목고에 들어갔다. 그 힘든 과정을 지나온 아이가 참 대견하고 기특했다. 벤과 내가 기대한 것은 미술뿐 아니라 연극, 음악 분야의 타과생들과의 교류, 전문 분야에 대한 다양한 배움과 실험적 시도와 새로운 기회 등이었다. 

우리가 너무 이상적이었던 걸까.

막상 입학하고보니 여학생38명과 남학생4명에서 오는 역성차별부터 겪어야 했다. 교사들은 무관심했고, 나잘난 아이들의 이기심과 그룹 수업에서 일년 동안 벤이 당한 은따는 결국 학교폭력 접수로 이어졌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살면서도 여전히 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교육청의 수습과 끝나지않는 가해자들의 교묘함에 당한 사람만 억울하고 아프다는 교육의 현실을 배우게 되었다.                                                           

남학생인 우리 아이만 빼고 여학생들만 모아서 단톡방을 만들어 작업을 진행한 강사에 대해서는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게 교육청은 잘 처리했다. 학폭에 가담한 강사는 사과 한마디없이 계약종료를 핑계로 사라졌다. 솔직한 내 마음은 찾아가서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교육청의 일이라며 신경도 안쓰던 학교 측은 주동자였던 아이를 후배들과 교류하는 대표 선배가 되어서 활동을 하게 두었다.  무엇을 배우라는 걸까. 교육청으로 넘어간 학폭은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고? 결과를 위해선 대화가 아니라 한 사람의 주도적인 권위가 효과적이라고?

 

특목고에 대해 가졌던 이상적인 생각은 상처와 후회로 남았다. 이건 비단 우리의 이야기뿐 아니라 대부분의 학부모가 내린 결론이고, 다른 특목고를 보낸 학부모도 비슷한 실망감으로 공감을 했다.                                                          벤이 다니는 학교는 폐쇄적이여서 타과생들과 교류할 기회를 애초에 차단해 놓았다. 방과후 수업으로 교류할 수 있게 했다고 하겠지만 모두가 시늉일 뿐이었다. 다양성을 못배우고 오로지 경쟁과 합격이라는 결과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만 배운 아이들은 당연히 전혀 예술적이지도, 창의적이지도 않다.

서로를 물고 뜯는 학생들의 문제가 매 해 반복되지만 학교측의 태도는 정해져 있다. 하루살이처럼 이번만 덮고 넘기면 된다는 식이다. 덮고덮는 교육청. 닳고닳은 교사들. 무관심한 얼굴로 대학 입학의 현수막만 제작하는 행정들. 

원래 남학생은 다섯명이었는데 학기 초부터 시작된 sns 폭력 사건 후 한명은 전학을 갔다. 그 애는 얼마나 후련할까. 전학을 간 학교에서 즐겁고 마음 편히 학교생활을 한다니 이 지옥에서 벗어난 그애가 부럽다. 2학년이어서 전학을 가기도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못비티겠으면 떠나야지라는 뉘앙스의 담임도 가관이다. 그래서 해마다 전학생을 배출했나보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우리나라의 교육에서 어떤 기대를 했던게 어리석은 일이었다. 착잡하다.


#특목고의현실#교육#공교육#블랙독#예술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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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SBS의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전화 받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그림을 남편이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연결연결돼서 SBS에까지 우연히 흘러 들어간 것 같아요

그 프로그램은 영재를 발굴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남편은 방송 섭외 요청에 들떠서 한시간가량 통화했어요. 언제 시작할까?라는 남편의 질문에 정작 아이들과 나는 싫다고 말했습니다. 영재라는 규정이 싫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영재가 아니라 그냥 평화로운 아이입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음미하는 삶에 어떤 틀을 갖다대고 제목을 붙이려 하는 것을 우리는 거부합니다.

생각해보면 모든 아이들이 영재성을 갖고 태어납니다. 우리 아이들이 특별하거나 특출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단지 아이들이 엄마와 공유하고 소통하는 부분이 조금 많을 뿐입니다.

 

나는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로 자라주길 바랐던 욕심을 버렸습니다. 그건 환상이고 욕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나도 함께 인간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조금씩 깨우치게 됩니다.

나는 바랍니다. 위로의 말을 건넬 줄 알고, 응원해주는 친구를 사귀고, 자신을 표현하면서 행복과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더 욕심을 부리자면, 감동을 주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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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를 닫을까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블로그를 없애기 전에 다시 읽어보니 나름의 치열한 고민들이 보여서 그냥 없애기가 아까웠어요.

누군가는 읽으면서 오만하기는....재수 없어.라고 생각했을 글도 있겠지만 그냥 들어줄 이 없고 나눌 이 없어서 이 블로그에 실컷 떠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지금 뉴질랜드에 와 있어요.

고독하기는 이곳이나 한국이나 변함이 없지만 적어도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이들은 없네요. 나에게 소리 지르고 거짓말하고, 늘 징징대는 이들이 없어서 이것이 사는거구나 싶네요. 뉴질랜드가 아니어도, 말레이시아나 캄보디아였어도 나는 그들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했을 것 같아요....

각설하고,

혼자서 고군부투하며 키운 아이들은 평범합니다. 예술적으로 두각을 나타낼까 기대했지만 지극히 평범하고 순수하고 착합니다. 한때는 아이들이 부적응아처럼 될까 몹시 염려되고 또다시 혼자서 울며 기도하는 시간도 있었지요. 그래서 나는 모든걸 뒤엎고 이곳에 왔습니다. 그리고 찬찬히 아이들을 살펴보며...조용히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어요.

이 아이들은 음악과 그림이 있는 환경에 익숙해있고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도 많아요. 나는 그 점을 머릿 속에 한줄 적어 놓았어요. 한국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키워야하나 ...또다시 혼자서 부딪치고 싸우고 기도하게 되면 적어놓은 글들을 힌트로 길을 찾으려 합니다.  

나는 걷는 중이고

이 글을 읽고 있을 님도 그러하고

우리 아이들도 걸어가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그러니 포기하지말고 계속 걸어 보아요.

오늘 밤엔...그냥..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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