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보라매 초등학교의 1학년 엄마가 되었다.

미니초등학교 주변에 아파트들이 어찌나 많은지 한 반에 42명이나 된다.

엄마들과는 되도록 말을 섞지 않는다. 출근시간을 늦추고 아이를 지켜본다. 공부는 복습 위주로 한다.등...생각이 많아졌다.

 

<입학한 지 4일 째>

예상대로 수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잠깐 동네유치원에 다닐 때, 아이들의 학부모로 알게 된 사이다.

교실청소를 갔다가 담임을 만났는데 미술전공인 걸 알더니 학급 게시판 꾸미기를 명령받았다고 했다.

(거의 명령조였다고 한다) 포토게시판과 시간표, 생일판까지. 수엄마는 도움을 청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했다. 자기가 아는 유일한 미술 전공자라며...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당장 내일 담임 만나러 같이 가자는 말에 덜컥했다. 둘이 같이 가면 분명히 담임은 이것저것 대놓고 일을 벌리며 다 시킬 것이고...선생님께 수시로 불려 다니거나 엄마들과 식사자리 자주 갖는 것 모두가 달갑지 않았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건강이 너무 안 좋아져서, 어린이집 수업을 다니기 때문에,  남편이 너무 나서지 말라며 굉장히 싫어한다는  말을 모두 전했다. 수엄마는 혼자서 해보겠다고 대답했지만 정 도움이 필요하면 조언을 구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입학한 지 8일 째>

학급 인원수가 너무 많아서인지 명예교사라는 이름으로 학부모 신청을 받고 있었다.일주일에 한번, 40분씩, 학부모의 전공을 살려 수업을 해달라는 거였다. 성미산 학교 입학 지원서의 질문에도 이와비슷한 것이 있었다. 얼마만큼 협조해줄 수 있느냐? 학교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가? 그때에는 빈혈이 너무 심해서 할 수 없다라는 답을 썼다. 하지만 성미산에서도 명예교사라는 형식으로, 구체적인 전공을 예로 들어가며 질문했더라면 내 대답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실제로 건강이 다시 악화되고 있었다. 운동도 그만 두고 아직까지 말하는 것도 힘이 들 정도다. 독서토론 교사로 일해보고 싶긴 한데...일년 동안 이 약해빠진 몸이 해낼 수 있을까. 어린이집 수업만으로도 힘에 벅찬걸. 유빈이는 엄마가 어린이집에서 그랬듯이 학교에서도 교사가 되어 주면 좋겠다한다.

 

<조언을 구하다.>

친구 숙이(6학년 딸, 3학년 아들을 두고 있다)  :  그냥 게시판도 같이 꾸미고 해. 나라면 하겠어.

                                                                     나는 다 했어. 내가 즐거워서 했어.너는 네생각대로 해.

 비디오 가게 아줌마(중1아들과 4학년 딸을 두고 있다) : 1학년은 그냥 엄마숙제라고 생각하세요. 

                                                                                엄마가 하는 만큼 아이에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세요. 선생님들도 많이 와서

                                                                               도와주길 바라실거예요.그런데 모르겠네요.

                                                                                유빈이는 얌전한 아이라서....말썽부리는 애들은 

                                                                                 엄마가 가면 도움이 많이 되거든요.

둘째 형님(중2딸과 고1딸을 두고 있다): 나는 1학년 때 어머니회 했었는데 2학년 때 안 하니깐

                                                        괘씸죄로 욕을 많이 먹었어. 할거면 죽 할 각오를 하고

안 하겠다면 아예 손을 대지마.

 

아~~몰라~~~~

내 초심은 어디로 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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