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기숙형 대안학교를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맑은 공기, 빛나는 별, 헌신적으로 보이는 선생님...

아이가 자립적으로 자라겠지, 산골아이처럼 건강하게말야...

그 당시,아직 6살인 초코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초코는 이제 10살이 된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초등기숙형 대안학교를 선택했으면 평생을 후회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막상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키워보니

이 시기에게는 부모의 사랑을 받는 안정감,영양(아무래도 기숙사 생활을 하면 먹을 것이 풍족치 않다),

신체의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어린 자녀와 부대끼며 많은 추억을 쌓는 것이 행복한 회상이 된다.

그 추억은 사춘기의 자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인내심, 여유, 믿음 같은 것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대안학교 문을 열려고 할 때마다 길을 막으셨던 하나님,

"내가 허락하는 곳으로 가라"하셨던 하나님,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선택이 될 뻔 했던 순간을 추억이 되게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교육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교육환경 하나만 보고 가족 구성원에게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이사는 옳지 않다.

교육환경 하나만 좋아지고 나머지는 모두 나빠진다면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다.

이사는 가족 구성원들의 동의하에

삶의 질을 높이고 가족의 안정을 위해 결정되어야 한다.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아이에게 지나친 투자를 하게 되면 

부모도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 보상을 원하게 된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아진다.

                              -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오은영 박사가 쓴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중에서

 

대안학교를 직접 탐방하면서 가장 고민이 됐던 것은,

아이의 교육 하나만을 바라보고 온가족이 이사를 하는 희생이였다.

주거공간이란 단순히 잠만 자고 밥만 먹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학교나  담임선생님, 경쟁 위주의 공교육에 대한 불만은 많다.

그러나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오히려 많은 인원이 북적대는 교실에서 지내다보니

아이의 예민하던 성격이 털털해진 것이 가장 기쁘다. 

한마디로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다. 아직 1,2학년이기는 하지만.^^

 

만약 대안학교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계속 짜증을 냈을 것 같다.

작업실을 구하는 일부터

이사를 하면 부수적으로 일년 정도를 따라 다니는 온갖 정리와 공적인 일들이 좀 많은가?

이사란 인형의 집을 바꾸는 것 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저렴한 구민체육센터, 공원, 병원까지 가까운 지금의 환경을 그리워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부모가 이사까지하며 너를 뒷받침하니 뭐가 되도 되겠지'란

기대심리를 늘 가졌을 것 같다.

 

두고두고 강조한다!!!

내가 조금 겪어보아도,

이 책 저 책을 뒤적여보아도, 

초등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적 안정이다.

학교에서 조금 피곤했을지라도, 공부가 힘들었을지라도 

가정이 주는 마음의 평안, 따뜻함은 재충전의 시간이 된다.

좋은 교육을 찾아 바깥을 헤매기 전에

부모 자신의 내면을 먼저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내 안의 잠잠함으로 아이를 평화롭게 교육할 수 있도록. 

 

개학을 앞두고 2학년 교실 청소를 갔다.

 

그런데 우리반 아이가 6학년짜리 형에게 맞아서 한쪽 볼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입술이 터져서 피가 고인 체 집으로 왔단다.

피해 아이의 집으로 당장 달려갔더니

문을 열자마자 비타500을 든 가해 학생이 인사를 꾸벅하면서 하는 말, "죄송합니다."

엄마는 달아나고 아빠는 회사갔고 할머니 혼자 방치한 체 키우는 것 같더라며 

온 동네 애들을 워낙 때리고 다녀서 그 집의 주소까지 동네아이들이 알고 있더란다.

그 얘기를 들은 다른 엄마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이에게 알아서 피해다니라고 했단다.

우리 아이만 피해다니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문제 해결이 아니다.

나는 지금 그 아이를 상담하고 치료해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도움을 구할 방법이 없어보인다.

일단 보호자가 있는 아이는 상담대상에서 제외된다. 

욕구를 말대신 폭력으로 푸는 아이는 사회 범죄의 싹이 아닐까?

 

문제는 가해자 뿐만이 아니다. 맞은 그 아이도 문제가 있다.

입에 욕을 달고사는 아이, 

너무나 산만해서 담임이 맨 앞 줄에 책상을 따로 놓고 계속 주의를 준다는 아이,

엄마는 마음껏 놀게 해준다고 말하지만

놀이터에서 어슬렁 거리다 질 나쁜 형들과 어울려 다니는 아이에 대해 

엄마는 문제의식이 없다.

그건 활달한 아이의 성향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수업이 활달한 기질의 아이를 구속한다고 생각한다.

방치를 자유라고 착각한다. 

욕은 수위가 좀 낮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항상 웃고 모범생인 우리 초코는 여성적이라고 평가한다.

하긴, 제 자식도 제대로 못보는데 남의 자식은 제대로 보겠는가.

 

나도 자식 키우는 일이 어렵다.

나도 고민을 많이 한다.

그러나 자기를 합리화하며 아이를 문제 상태로 그냥 두는  부모들을 대할 때면

너무나 화가 난다.

그러면서 비행 청소년들 뉴스에 뜨악하는지

그러면서 사회범죄 뉴스가 제 자식과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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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대안학교 학생이라고 해서 더 예의바르고, 남을 배려하고, 철학적이고, 창의적인가?

공교육 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더 공격적이고, 우울하고, 생각이 막혀 있는가?

아니다.

요즘은 인성교육이 문제다.

그 인성교육은, 감정과 본능으로만 교육하는 부모들 때문이다.

대안학교에 다니건, 혁신학교이건, 홈스쿨링이건, 공교육을 받고 있건,

부모인 당신, 자신이 문제다.

  

맹자의 어머니가 아이의 교육을 위해 세번을 이사했다지.

나도 대안학교를 알아보려 다닐 때 '맹모삼천지교'를 떠올렸다.

자식을 위해서 그쯤이야!

남한산 초등학교에 관한 정보를 얻었을 때에도 떠올렸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맹모삼천지교라구요? 당신이 어딜 가든, 당신의 아이는 당신을 닮을 겁니다."

 

 

대안학교나 혁신학교를 생각하는 다른부모를 만나면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아..부모가 트인 사람이구나. 교육에 대해 생각이 있는 사람이구나,

남이 가지 않는 길일지라도 과감히 가는, 용기있는 사람이구나.

그런데 그 부모의 아이를 보니!!

세상에...!! 

생각이 바뀌었다.

 

'제 아이의 문제를 보지 못하고 교육 탓만 하며 돌아다니려 하는구나.'

 

 ㅎ 엄마는 선생님의 체벌에 대해 반감을 표시했다. 귀를 잡아당기거나 꿀밤을 맞거나 뺨에 대고 손바닥을 마주치거나하는 체벌.

자신의 아이가 안맞더라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공포감을 느낄거라며 대안학교를 알아보려 한다고 했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인격적인 모독이나 기준이 없는 체벌이라면 모를까.

40명이 넘는 아이를 통제하기 위해선 교사들도 어쩔 수 없이 엄격해질 것이다. 게다가 내가 봐도 요즘 아이들은 너무 오냐오냐 자랐다.

부정적인 감정이나 상황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살다보면 그런 상황은 늘 있다.

아이에게 좋은 교육은 마냥 꿈꾸며 신나게 사는 것이 아니다.

부모와 소통의 코드를 갖고 있는 아이,

상상력이 있는 아이,

남을 칭찬할 줄 아는 아이,

생각할 줄 아는 아이는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길러지는 습관이 아니다.

 

부모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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